잘나갔던 미모의 아나운서가 다버리고 뉴욕으로 떠난 현실

잘나갔던 미모의 아나운서가 다버리고 뉴욕으로 떠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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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예능 코너 <위험한 초대>를 기억하시나요?

 

 

게스트가 특정 행동, 혹은 특정 단어를 언급하면 패널들이 물벼락을 맞거나 수영장으로 날아가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내곤 했죠. 해당 코너에는 유재석을 비롯한 인기 개그맨들이 여럿 출연했었는데요.

 

 

하지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물벼락과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 때문에 자칫 혼란스러울 수 있는 상황을 깔끔한 진행 실력으로 정리했던 전 아나운서 임성민의 존재감도 엄청났습니다.

 

 

최근 방송에서 좀처럼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그녀의 근황을 함께 살펴보시죠.

 

공부 잘했던 모범생
사실은 '배우가 하고 싶어요'

임성민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재능이 있었습니다.

 

 

성실한 학창 시절을 보낸 그녀는 이화여대에 진학하며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는데요.

 

 

하지만 사실 그녀의 진짜 꿈은 탤런트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1991년 부모님 몰래 KBS 탤런트 공채 시험에 응시해 덜컥 합격을 거머쥐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부모님에게 들켜 연예계 생활을 시작도 전에 포기해야 했습니다.
    

아나운서로 진로를 변경한 임성민은 1994년 KBS 공채 20기 아나운서로 선발되며 비로소 방송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아름다운 미모에 뛰어난 진행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 그녀는 <쇼 행운열차>의 진행을 담당한 데 이어 여러 예능 프로그램의 MC를 맡아 아나테이너의 입지를 단단히 다졌습니다.

 

꿈 좇아 '프리선언'
생활고에 극단적 선택 생각도

하지만 임성민은 아나운서로 큰 명성을 얻었음에도 오랜 시간 남몰래 품어왔던 배우라는 직업을 차마 포기할 수 없었는데요.

 

결국 그녀는 고민 끝에 2001년 사직서를 제출하고 프리랜서로 전향합니다.

 


그러나 임성민이 그토록 바랬던 배우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아나운서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그녀를 끈질기게 따라다녔기 때문인데요.

 

 

그녀는 어느 곳에서도 배역을 주지 않자 큰 우울감에 빠졌습니다.

 

 

 

힘든 내색을 하면 '그러게 왜 아나운서를 그만뒀냐', '아나운서 주제에 왜 연기를 하냐'는 말을 들을까 차마 티를 낼 수도 없었다고 하는데요. 생활고까지 겪으며 심한 우울증을 앓았던 그녀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해봤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임성민은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 <동이>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 진지한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 출연을 결정지었을 때는 역할을 위해 과감하게 삭발을 하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의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죠.

 

 

영화제에서 만난 외국인 남편,
알고 보니 재벌가?

2008년, 꿈만 보고 달리던 그녀에게도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당시 부산 국제 영화제의 진행자였던 임성민은 게스트로 참여한 지금의 남편, 마이클 엉거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소속 교수로 알려져 있죠.

 

 

온통 일 생각뿐이던 그녀와는 달리 마이클 엉거는 임성민을 본 순간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에 별 뜻이 없던 그녀의 마음을 쟁취하는데 성공하죠.
   

마이클 엉거와 임성민은 약 3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 합니다.

 

 

이들의 결혼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녀의 남편도 덩달아 화제가 되었죠. 당시 '임성민의 남편이 재벌이다'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요.

 

 

알고 보니 그녀의 시어머니가 미국 유명 포테이토칩 회사 창업주의 딸이었습니다.

 

 

하지만 임성민은 '재벌가로 시집가는 것이냐'는 질문에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는 부분은 없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반백살'에 내던진 도전장
남편 응원 업고 뉴욕으로

한편 임성민은 50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떠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한국에만 있으니 정체되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며 더 발전하고, 더 배우고 싶다는 욕심에 뉴욕에서의 유학을 선택하게 되었는데요.

 

 

어렵고도 과감한 결정이었지만 그녀가 이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응원의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뉴욕에서 연기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임성민의 말에 남편은 선뜻 망설이지 말고 도전해보라며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죠.

 

 

이후 이들은 결혼 8년 만에 별거 아닌 별거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역할의 오디션에 참가하는 등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길고도 짧았던 유학 생활 끝에 현재는 귀국하여 남편과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용기를 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열정 하나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녀의 도전이 더욱 빛나는 이유인데요.

 

 

임성민은 미국에 머무는 동안 뜻밖의 생활고에 시달리는 등 고초를 겪었지만 그토록 바랐던 세계 무대에서의 값진 경험을 얻어 돌아왔습니다.

 

 

배우로서 더욱 성숙해진 그녀의 모습을 하루빨리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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