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동안 했던 피겨를 그만두고 무당 되겠다는 딸
- 핫이슈
- 2020. 12. 30. 10:14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의 어머니는 자신의 책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를 통해 딸을 세계 챔피언으로 만들기 위해 가족들이 감내한 희생과 역경에 대해 토로한 바 있습니다.
이미 천재로 주목받던 주니어 시절에도 훈련비를 감당하기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받았고 IMF 시기에는 경제적 문제 때문에 진지하게 은퇴를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주니어급 선수들은 기업의 후원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이고 따라서 코치 비용과 국제 대회 출전비, 의상비, 훈련비, 안무지도비 등 억 소리 나는 비용을 개인이 알아서 충당해야 하는데요.
집을 팔면서 뒷바라지한 딸이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초등학교 시절 전국대회에서 전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주목받던 피겨 유망주에서 신내림을 받고 빙상을 떠났다는 주인공은 전 피겨선수 최원희입니다.
10살 무렵 피겨를 시작한 최원희는 또래 선수들에 비해 다소 늦게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스스로 "노력하고자 할 때는 다 됐었던 거 같다"라고 회상할 만큼 성장해나갔습니다.
선수시절에 대해 최원희는 "올 클린하고, 트리플 점프를 너무 쉽게 뛰었을 때도 있었다.
제일 많이 들었던 말도, 내가 많이 느꼈던 것도 '난 재능파구나'였다"면서 "점프를 뛰고 싶으면 뛰어졌고, 점프를 해야겠다 하면 됐었던 게 재능이 아니었을까"라고 표현할 정도.
다만 최원희가 선수로서 커리어를 쌓는 동안 집안 형편은 날로 어려워졌습니다.
당시에 대해 최원희의 어머니는 "남들이 상상 못하는 돈이 들어갔다.
집도 팔고 경제적인 이유로 부부간의 다툼이 생겼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최원희의 부모님은 같이 살지 않았고 그때부터 최원희의 어머니는 혼자서 딸의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노래방과 보험 일을 했고 공장 운영까지 하면서 최원희의 훈련비용을 댔습니다.
그러는 동안 최원희의 두 언니 역시 크게 희생하며 지냈지요.
가족들의 희생과 배려 덕분에 선수생활을 이어간 최원희는 2012년 전국 동계체육대회 여중부 3위, 2014년 서울시 교육감배 여고부 1위 등 크고 작은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잦은 부상이 국가대표로 가는 길을 막았고, 결정적으로 평창동계올림픽를 앞두고 국가대표 상비군 선발을 노리던 차에 전산 상 선수등록이 누락되는 오류로 인해 어렵게 쌓은 대회 포인트를 모두 날리는 역경을 겪었습니다.
당시에 대해 최원희는 "선수 등록됐다는 수화기 너머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세 번 넘게 확인을 했는데 갑자기 연맹에서 연락이 와서 선수 등록이 안 되어 있어서 여태껏 나갔던 대회가 다 무산이 됐다고 했다"라며 "그때 꼬이지 않았나 싶다.
너무 아쉽게도 국가대표를 하지 못했고, 그러면서 좀 많이 어그러진 걸 느꼈다"라고 아쉬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코치조차 "너 참 안 풀린다"라고 했을 만큼 순탄치 않은 선수생활을 보낸 최원희는 결국 국가대표 마크를 달지 못한 채 20살 마지막 시즌으로 은퇴했습니다.
이후 최원희는 피겨 코치로서 여전히 빙상을 지켰는데요. 코치 생활은 즐거웠지만 새로운 역경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어린 시절부터 겪은 신병 증상이 성인이 되면서 더욱 심해진 것이지요.
최원희의 말에 따르면 10살부터 피겨만 보고 살아온 자신은 꾸준히 신병이라는 남모를 고통을 겪고 있었고 정신력으로 극복하자는 마음으로 견뎌왔다는 것.
최원희는 "러츠라는 점프를 뛰려고 하는데 뛸 때 돌려고 하는데 귀신이 보이는 거다.
사람이 놀라니까 점프 감던 걸 풀게 되지 않나. 그래서 못 뛰게 되고 그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까 너무 무서웠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알고 보니 최원희의 어머니도 딸의 신병을 걱정해서 딸 몰래 무당을 찾아가 누름굿을 하기도 했다는데요.
선수 시절 그야말로 정신력을 버티던 최원희는 코치 생활을 시작한 후 극심해진 신병 증상으로 고통을 받았고 결국 23살이 된 올해 어머니께 "엄마 나 이제 피겨 선생님 못할 것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지난 10월 신내림을 받은 최원희는 최근 한 다큐 프로에 출연해서 "신내림을 3년만 미루자고 했는데 내 입으로 할머니가 말씀하시더라.
'3년 기다려봐. 애가 죽나 안 죽나 한 번 보게' 이렇게 내 입을 통해 말씀하신 거다"면서 "신내림 테스트를 받는데 내 입으로 그런 말이 나와버리니까"라고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담담히 고백했습니다.
신내림을 받고 처음 신당을 차리고 자리에 앉은 순간 최원희는 통곡했습니다.
신당 한 쪽 벽면에 붙은 피겨선수 시절 포스터와 한복을 차려입고 신당에 앉은 자신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이제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인생 1막이 끝났다'라는 생각이 든 것.
무엇보다 13년을 집중한 피겨 분야를 아름답게 마무리하지 못하고 끝냈다는 아쉬움이 가장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는 최원희는 "지금 돌이켜봤을 때 그때부터 이런 길을 확실히 주려고 선수로서 길을 안 주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무속인이 된 사실을 알리지도 못한 아버지와 무당이 된다고 고백한 이후 절연한 두 언니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내가 피겨 선생님이었으면 가정이 깨지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언니들과 화목했던 때가 많이 생각난다"라고 말했는데요.
스케이트 대신 작두를 타는 최원희의 인생 2막에는 가족들도 함께 행복한 일상이 찾아오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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